1. 장례지도사가 말해주는 영화정보
영화 3일은 죽음을 다루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낸 작품입니다. 장례지도사로서 수많은 이별을 지켜봐 온 제게 이 영화는 유독 깊이 다가왔습니다.
이 영화는 사망한 사람이 떠나기까지의 마지막 3일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장례식장이라는 공간은 늘 슬픔이 가득한 곳이지만, 영화 속에서는 단순한 이별이 아닌 남겨진 사람들의 감정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고인을 보내려 하고, 때로는 후회와 미련이 남기도 하며, 때로는 지난 기억들을 떠올리며 따뜻한 미소를 짓기도 합니다.
주인공은 장례지도사로서 누구보다 죽음과 가까운 삶을 살아갑니다. 매일같이 타인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면서도, 정작 자신의 감정은 깊이 들여다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장례식을 맡으면서 그는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합니다. 남겨진 사람들이 고인을 떠나보내는 과정을 함께하며, 자신의 삶과 감정도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이지요.
영화를 보면서 제 일과도 많이 겹쳐 보였습니다. 장례식장에서 일하다 보면 슬픔이란 감정에 익숙해질 것 같지만, 사실 그 순간순간마다 느껴지는 감정은 다릅니다. 어떤 이별은 너무도 급작스럽고, 어떤 이별은 오랜 기다림 끝에 찾아옵니다. 하지만 모두가 마지막 3일이라는 시간을 통해 조금씩 정리하고, 받아들이고, 고인을 보내는 법을 배웁니다.
3일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그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들의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냅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제 일상을 돌아보게 되었고, 매일 만나게 되는 유가족들의 마음을 다시 한번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작품이었습니다.
2. 어머니를 떠나보낸 태하의 마음
어머니가 떠난 지 몇 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병원 침대 위에 누워 계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이제는 차가운 관 속에 계신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를 보며 미소 짓던 분이었는데, 이렇게 갑자기 떠나버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
어머니의 장례식이 준비되는 동안, 나는 어색하게 서 있기만 했다. 조문객들이 찾아와 위로의 말을 건넸지만, 그 말들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한 마디 한 마디가 멀게만 느껴졌다. 모두가 나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정작 나는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니, 느끼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슬픔을 인정하면, 정말로 어머니가 떠난 것이 현실이 될 것 같아서.
문득 어머니의 마지막 순간이 떠올랐다. 나는 평소처럼 바쁜 하루를 보내느라 어머니의 전화를 받지 못했다. 나중에 다시 걸어야지, 조금 있다가 연락해야지, 그렇게 미루는 사이 어머니는 나를 기다리다 홀로 눈을 감으셨다. 마지막 인사를 나누지도 못한 채, 너무도 허무하게. 그게 가장 괴로웠다. 한 번이라도 더 목소리를 들었더라면, 마지막으로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면, 이렇게까지 후회가 남지는 않았을까.
장례식장이 조용해지면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태하야, 밥은 챙겨 먹었니?” 언제나 나를 걱정하던 그 목소리. 하지만 이제는 그 질문에 대답할 사람이 없다.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들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슬펐다.
어머니의 마지막 3일이 지나면, 모두가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커다란 빈자리를 안고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너무 갑작스럽게 남겨져 버린 나는, 이제 어떻게 어머니 없는 삶을 살아야 하는 걸까.
3. 장례를 도우는 하진의 마음
장례지도사로서 나는 수많은 이별을 지켜봐 왔다. 하지만 태하의 어머니처럼 자신의 장례를 스스로 준비하는 분은 처음이었다. 처음 그분을 만났을 때, 나는 다소 당황스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죽음을 멀리하려 하고, 애써 외면하려 한다. 하지만 그분은 달랐다. 오히려 담담한 태도로 자신의 마지막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분은 나에게 하나하나 세세하게 물었다. 어떤 꽃을 사용할지, 영정사진은 어떤 느낌이 좋을지, 장례식 음악은 어떤 것이 좋을지. 나는 가능한 한 전문적인 태도로 조언을 드렸고, 그분의 뜻을 최대한 존중하며 도왔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러 번 고민했다. 장례식은 남겨진 이들을 위한 것이라는 게 내 철학이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준비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것이 본인에게는 위안이 될까, 아니면 남겨질 가족을 위한 배려일까?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그분의 마음을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태하의 어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진 아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더 컸다. “나는 태하한테 슬픈 기억이 아니라, 따뜻한 이별로 남고 싶어요.” 그분의 말이 깊이 와닿았다. 많은 유가족들이 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아왔기에, 준비된 이별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렇게 1년 동안 나는 장례지도사로서 그분의 곁을 지켰다. 감정을 배제하려 했지만, 솔직히 쉽지 않았다. 마지막 상담을 하던 날, 그분은 환하게 웃으며 내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그분의 장례를 직접 맡게 되었다.
직업적으로 나는 최선을 다해 정성을 담았고, 준비된 장례식은 그분의 뜻대로 차분하게 진행됐다. 하지만 유가족으로 남겨진 태하를 보며, 이별이 아무리 준비된다고 해도 슬픔이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장례지도사로서 할 일을 했을 뿐이지만, 이번 장례는 내게도 깊은 여운을 남긴 특별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