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2023)은 1979년 10.26 사태 이후 전두환 신군부 세력이 벌인 12.12 군사반란을 다룬 정치·역사 드라마다. 김성수 감독이 연출하고, 황정민, 정우성, 이성민, 박해준 등이 출연했다.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장악하는 과정과 이를 막으려는 군인들의 대립을 긴장감 있게 그려내며, 현대사에서 가장 혼란스러웠던 순간을 생생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1. 서울의 봄(2023) - 영화 줄거리
1979년 10월 26일, 우리는 독재 정권이 끝나는 것을 보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에 맞아 사망하면서, 대한민국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할 것 같았다. 이제는 군부가 아닌 국민이 원하는 민주주의가 시작될 거라는 희망이 피어올랐다. 거리 곳곳에서 사람들은 조심스럽지만, 앞으로 다가올 변화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 기대는 오래가지 못했다.
12월 12일, 일부 군인들이 스스로 권력을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다. 전두광과 그의 군부 세력은 계엄군을 동원해 서울을 장악하려 했고, 이를 저지하려는 군인들과 충돌했다. 뉴스에서는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거리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국민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군부가 다시 권력을 잡으려 한다면, 우리가 바라던 민주주의는 또다시 멀어질 터였다.
결국, 그날 밤 서울 곳곳에서 총성이 울렸다. 신군부는 무력을 앞세워 정권을 장악했고, 우리는 또다시 군사정권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민주주의를 향한 기대는 무너졌고, 자유를 외치던 목소리는 억압당했다. 사람들은 다시 숨죽여야 했고, 권력에 맞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체감해야 했다. 서울의 봄은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변화가 어떻게 무너졌는지를 보여주며, 국민이 주인이 되는 세상이 얼마나 힘든 길인지 다시금 깨닫게 한다.
2. 군사반란의 내막
나는 전두광이다. 1979년 10월 26일, 박통이 암살당하며 대한민국은 혼란에 빠졌다.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나는 이 기회를 잡아야 했다. 군을 장악하지 않으면 앞으로의 미래는 없었다. 하지만 아직 이희성 참모총장이 군의 공식 지휘권을 가지고 있었고, 나를 견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신속하고 철저하게 움직여야 했다.
나는 먼저 나와 뜻을 함께할 장성들과 사전 모의를 했다. 보안사령부와 수도경비사령부, 9사단과 11사단의 일부 부대를 내 편으로 만들었다. 우리에게 충성할 군부대가 충분히 확보되면, 정권을 장악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12월 12일을 결행일로 정하고, 작전이 시작되면 서울 주요 거점을 신속히 점령하고, 반대 세력을 제압할 계획을 세웠다.
반란 당일, 나는 이희성 참모총장에게 나의 부하를 보안사령관으로 임명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이희성은 이를 거부하며 끝까지 저항하려 했다. 나는 이미 대비하고 있었다. 수경사와 공수부대를 동원해 국방부를 포위하고, 전차와 병력을 앞세워 군 지휘부를 압박했다.
총성이 울리고, 결국 이희성도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그는 우리의 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대한민국의 새로운 권력자가 되었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진행되었고, 나는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볼 수 있었다.
3. 희생자들
전두환 군사정권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는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을 무력으로 진압하며 수많은 시민들을 학살했다.
광주 시민들은 신군부의 불법적인 정권 장악에 저항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했지만, 전두환 정권은 계엄군을 투입해 무차별적인 발포와 폭력을 행사했다. 공식적으로 발표된 사망자 수는 200여 명이지만, 실제로는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부상을 당했으며, 행방불명된 사람들도 많았다. 계엄군은 시민들을 "폭도"로 몰아세우며 잔혹하게 탄압했고, 심지어 부상자들을 병원에서 끌어내 구타하거나 총살하는 만행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전두환 정권은 군사정권에 반대하는 지식인, 학생운동가, 언론인들을 탄압했다. 삼청교육대가 대표적인 사례다. 1980년부터 신군부는 사회 정화를 명목으로 약 6만여 명을 강제 연행해 삼청교육대로 보냈고, 그곳에서 극심한 폭력과 고문, 비인간적인 훈련을 강요했다. 일부는 그곳에서 사망하거나 평생 후유증을 안고 살아야 했다.
또한, 언론 통폐합을 통해 비판적인 언론을 강제로 폐쇄하고, 민주화 운동을 탄압했다. 신군부에 반대하는 교수나 작가들은 강제로 해직되거나 투옥되었으며, 수많은 학생운동가들이 고문을 당했다.
전두환 정권의 폭압적인 통치는 민주주의를 외쳤던 수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켰고, 그들의 피와 눈물 속에서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